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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증이 되게 하소서~

이 미천한 소자를 어디에 쓰시려고, 하나님이 저를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by 푸른사랑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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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간증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산증인이 되려하나 봅니다.

죄많은 저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냥 두어도, 하나님은 끝없이 저를 부르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축복주시고 저를 불러 사용하시고 늘 좋은걸 주려 하고 계십니다.

제가 알지못하는 놀라운 일들도 준비하고 계십니다.

저의 간증은 생활중 제가 정말 느끼고 받은 은혜만을 남길까 합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자기가 느껴야한다고. ....이글 읽으시는분은

간접경험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시길 기도드립니다.

저의 어린시절은 천년의고도 경상북도 경주, 산속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머하나 부러울게 없는 집안에서 큰 마당도 있고 사랑채도 있는 좀 사는?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저의 유년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저의 기억에도 없는 이야기 입니다.

어린시절, 저희 집안에 뒷 산속에서 어린 사슴이 집안으로 내려와

할아버지,할머니댁 마당안 우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뒤 저희 아버님 동생(삼촌)이 부산에서 급사 하셔서 소천하셨고, 그뒤 그 아픔과 함께온

폐암으로 저를 정말 아끼고 이뻐해주시던 할아버님마저 소천하셨습니다.

그때가 전 초등학교 4학년 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성당에서 결혼하셨고 이런일들이 있기전까진 성당에가서 예배를 드리고

믿음이 있으셨던걸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님이 소천하시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모들까지. 모두 절에 열심히 다니십니다.

아직까지도 절과 우상숭배와 저는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님 직장 때문에 포항으로 이사해서 생활하던중 유년시절 부친의 음주사고로

집도 잃고 많은 돈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말 저는 포항이라는 낮선 곳에와서 친구도 별로없던 시절 이였고. 집이 없어진 상태에서 어머니 친구집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어려운시절을 보내던 찰라에 뒷집에 사는 동갑네기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저 에게 손내민 #복음의씨앗 (처음 부르심)입니다.

그 친구따라 주일마다 아니 틈나는 데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통기타도 배울수 있었고 지금도 18번 애창곡이며 난생 처음 통기타 독주와 함께

불러본노래 "#실로암"(이란 노래...이노래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학고사를 마치고 편의점 알바시절 새벽에 부르면서 눈물흘리며 회계하던 노래 이기도 합니다.)과 함께 믿음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처럼 사춘기에 빠지고 탈선하여 담배며 술도 접하며 힘든 가정환경속에 어긋나갈뻔한 시절을

그 친구덕분에 청년부 시절을 하며 멋진 청년으로 성장? ^^;;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운명을 바꾸신 하나님을 떠나보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친구와도 헤어지면서 바로옆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못하게 됩니다. 사실 초등학교때 복음을 전해준 고마운 친구 아버님은 제가 다닌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이신 아버님과 함께 친구 가족들이 다른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저도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또 사회에 물들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땡땡이 스럽게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막...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초에 대학교란 것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 학과도 명확하게 말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쉽게 접하지만 제가 공부할때만해도 참..역사가 깊은 애플컴퓨터며, 테이프컴퓨터며, 카세트 컴퓨터, IBM, 천리안, 나우누리 등 흘러간 컴퓨터역사속에서도. 갑자기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중고등 시절을 막 미친듯이 놀았기 때문에 갈수있는 실력도 안되었고 내신도 받쳐주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어지니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계명대학교, 동국대학교, 동서대학교, 또 다른곳 3~4곳을 원서 넣을수 있는데는 전부 넣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런데 한 군대도 입학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고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발표를 기다리는 기간중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바로 그때 새벽에 불렀던 노래가 바로 실로암입니다. 저로 모르게 검은 맑고 청명한 겨울 하늘위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하늘을 향해 부르면서 눈물 흘렸고 그때 다시 하나님이 절 보고 계신걸 알았습니다. 정말 겨울새벽하늘이 그렇게 맑고 시원한 느낌인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느낌은 뒤에 한번 더 느끼게 됩니다. 현재로 정말 너무 맑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육감으로 느낀 상큼함과 시원한 청량감은 2번 입니다. 뒤에 한번 더 나오지만 우리 아들 도윤이 태어나고 선아에게 축하 꽃다발을 사러가며 느낀 주일 아침 맑은공기를 추후에 한번 더 느끼게 됩니다. 아마 #주님의호흡 이신듯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일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동서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고 등록하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부터 저를 사용하시려고 미리 설계를 해 두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 독립? 하여 부산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나는 대학생활 물만난 고기 마냥. 친구들과 이성들과 밤새 술마시며 놀고 유흥에 학업도 소홀한채

술과 담배와 함께 살았습니다. 정말 배워보겠다는 학구열도 접어두고,

또 다시 하나님이 옆에 계시다는걸 잊어버리며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다, 대학교 학생회 생활도 하게되며

대모 라는 것도 하고 총장실 점거농성에 그리고 결국 본가에 학교에서 보낸 경고장(퇴학)등의 타락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즈음하여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만 해도 일반 사병인줄 알았습니다. 강원도 산골로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학과 때문인지 아니면 놀면서도 강의를 들은 얄팍한 컴퓨터 지식때문인지 군대내에서 컴퓨터를 다룰줄 아는 사병이 거의 없어서 작전병이라는 임무를 맏게 되었고 그렇게 군생활을 했습니다. 작전병은 일반사병보단 편한 행정병 같은 곳 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하나님의 쓰임이 계셨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작전상황실 컴퓨터를 전부 관리했고, 사단사령부 이기때문에 별 다신 높은 분들 컴퓨터 행정 업무도 병행하며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저를 불러 찬양,그리고 기도하게 하셨고 그렇게 군 생활속에서 다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이등병, 일등병, 상병까지 순조롭던 군생활 속에서 병장으로 진급하고 전역을 한두어달 남았을때 갑자기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져서 산속에서 마지막 군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그시절 같이 참전했던 전우도 죽고 현대판 전쟁터였습니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정말 너무 무차비하게 뚤려버린

정말 힘든, 그런 암흑속에서도 저를 어디에 사용하시려는지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건져내셨습니다.

몸 건강히 군 복무를 마치고 그렇게 전역하여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서대학교에 복학하여 열심히 학교생활하며 채플강의를 듣던중에 알게된 입학할때도 몰랐던 사실은

이 학교가 기도로 세워진 기독교 재단의 학교였던것입니다. 아마 계획하고 저를 이 곳에 넣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학교생활및 컴퓨터 관련 아르바이트, 컴퓨터음악(MIDI) 동아리회장등 알찬 대학 생활을 하며,

공대생으로 학사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삼보컴퓨터, 천리안등 꽤 유명한회사에 다녔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인터넷 생중계현장 PD, 서울 강남 테헤란 벤처기업 실장, 부산인터넷방송협회 사무국이사등

젊은나이에 요즘말대로 잘나가는 청년실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잘나갈때는 항상 하나님이 옆에 계신걸 잊어버립니다. ^^(지금은 잘나가나 못나가나 늘 제 옆에서 지금도 이 글을 읽고 계십니다.) 그런생활속에 메뚜기 처럼 더 높은곳만 보고 이직을 자주하며 몸값을 높이던중. 바로 된통 혼나게 됩니다.

벤처붐이 일다가 확 거품이 꺼지면서 제가 몸담고 있던 회사도 부도를 맞게되고. 임금도 체불되며 생활비조차 카드깡에 자금이며 여러가지 힘든상황이 오게됩니다. 그런데 신생 벤처기업에서 저를 스카웃하게 되었고 스카웃조건이 기존 임금체불 해결이였던것입니다. 빛잔치가 한방에 끝나버린 것이였습니다. 입사뒤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침 조회시간마다 기도를 드리고, 찬양예배를 드린 #하나님의기업 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저의 믿음은 너무 약한 실처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부르시고 저에게 부어주고

나중에 유용하게 사용하시려고 저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다시 평온한생활속에서 거래처 사장님이 조카 컴퓨터가 안된다고 아는사람 소개좀 해달라고 해서 저를 소개시켜 줬습니다. 그 조카 컴퓨터 수리하러 가면서 소개해준 사장님에게 들은이야기로는 컴퓨터는 그냥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식사나 커피한잔 하란거 였습니다. 바로 소개팅이였던겁니다. 어려운 생활들이 정리되긴 했지만, 자금 상황이 아직 완전히 좋지 않아서 여자 만날 형편이 아니였지만 그냥 만나러 갔습니다.

그녀의 집 근처에서 통화를 하고 기다리는데 설마 저여잔 아니겠지. 하며. 설마~

하는데 바로 앞에와서 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였습니다. 그순간 숨이 턱 막히는것 같았습니다.

저를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제 외모는 개그맨 박명수, 김영철 그리고 저 3명중 누가 괜찮냐고 물으면 제가 꼴지거나 저를 아시는 분은 멋적어 하면서 선택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ㅋㅋ. 하나님은 참 공평하십니다.

저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시면서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를 만들다 중단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박명수와 김영철 님을 비하하는건 하는건 아닙니다. 예시를 들다보니 ^^;;

정말 저에게 안맞는 눈에 확띄는 미모의 여인이였습니다. 소개해주신분 말대로 컴퓨터는 그 때부터 뒷전이였습니다

일단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집근처 커피숍에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장소를 이동해서 또 차를 마시고 , 그리고 바닷가로 가서 다시 차 마시며 이야기 하고 밤늦게 헤어지고 자취방에 돌아와 저녁 배고픔도 잊은채 차만 몇잔마시고 돌아와 멍하게 만든 여자를 만났습니다. 바로 지금의 사랑스런 와이프입니다.

첫눈에 반한 청년은 와이프 직장이 덕계방면이였고 저는 서면쪽이여서 이동거리가 한시간 왕복 2시간이였지만

하루 한번 많게는 두번 만났고, 잦은 서울출장속에서도 IP Web Camara 벤처 개발실장이였던 탓에 인터넷으로 실시간 화상채팅(초창기 개발시스템을 연예에 활용^^)을 하며 사랑을 키우다 얼마 지나지않아서 결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임금체불등 제가 가진 돈도 없었고 빛만 있었던 터라 신혼생활은 난관에 부딪치고, 불같이 첫눈에 반했지만, 30여년 서로 다른 상황속에 살다가 만난지 1년도 안되었으니 성격차이로 많이 다투고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믿음의씨앗 을 주신 장모님(#순복음금정교회 김의자 권사님)을 자주 뵈었었고

하나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내민 직장도 경기가 어려워져 퇴사를 하게되고, 서면 컴퓨터 학원강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지인분의 추천으로 국내중견기업 패션회사에 스카웃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일반사원에서 팀장까지 그리고 컴퓨터 실력도 삼성SDI에서 스카웃제의가 있을 정도로 높이셨고, 가정도 축복을 주셔서 일반 직장인들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며 저의 모든것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처가집근처로 이사를 하게되었고, 지금의 믿음씨앗이신 장모님을 따라 현재 섬기고있는

#부산순복음금정교회 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많은 축복과 확고한 믿음을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 믿음을 씨앗을 준친구가 장로교였고, 회사생활 때도 그렇고 사실 순복음이 조금 열정적이라 처음에 적응이 안되었던건 사실입니다. 기도할때 박수치며 울부짖으며 찬양등 처음가는 성도나 믿음이 부족한 성도들은

진입의 장벽이 높은건 사실입니다 지금 저는 기도할때 박수치며 울부짖습니다. ㅎㅎ

그런 믿음속에서 축복과 은혜를 계속주셨습니다.

저보다 믿음이 더욱강한 아들 도윤이를 주셨고, 믿음의 아이로 성장하며 높이 쓰임 받으며 사용하고계십니다.

저의 외모? ^^;; 와는 달리 아들은 엄마의 유전자로 교회 달력모델, 외부 목사님 초청 꽃인사, 찬양예배등

유용하게 저보다 더 잘 사용하고 높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 또한 하나님은 잘 사용하십니다. 부전공인 사진과 방송 달란트를 살려서 교회 행사 사진등을 촬영하며

봉사하게 하셨고, 지금의 방송실 홈페이지 및 인터넷생방송 관리 및 운영등을 하게 하시고,

#순복음금정교회로고 를 디자인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튜브 순복음금정교회 온라인 생중계 시스템운영, 이렇게 블로거 등 온라인사역을 하라고

그렇게 저를 컴퓨터공학에 보내시고 인터넷방송국 벤처회사등 저를 다듬으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르심과 사용하심은 끝이 아닌것 같습니다.

현재 교회 주보사진 촬영원본 / 김민찬 촬영 "남산동 구포국수" 외벽 옥상촬영

 

2018년 1월 23일 현재 교회 주보사진 촬영을 할정도의 실력도,

하나님은 저에게 사진촬영과 편집 달란트도 주셨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전공했음에도 잘 다니고있는 회사를 그만두게 하시고, 전혀 엉뚱하게

식재료 유통회사를 차리게 해서 믿음의 불모지인 농산물시장에 저를 보내셨고 새벽에 깨어있음과 함께

보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산증인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또 돈좀 벌면서 생활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믿음이 약할때

저 에게 또다른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농산물시장안에 유통회사를 정리하게 하셨고,

식재료 유통회사를 하면서 프랜차이저 기업으로 성장할수있는 "#BM (비엠)" 회사를 만들고,

"달팽이, "구구뚝배기" "오이시생라멘","이쯔생라멘", "면찌개반찬" "돈라국(돈코츠라멘,국밥)"브랜드를 만들어

하나님의 기업으로 성장하며 또 다른 계획을 구상하시는 하나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을 작은 나눔을 주던 초등학생이 지금 성인이되어 대학을 입학하여 학교생활을 잘하고있는 감사를 주셨고, 또 다른 학생으로 이어서 작은 나눔의 은혜와, #극동방송전파선교사

제가 하는것이 아니라 이 모든일들이 하나님 기업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지금 저와 함께 몇 시간동안 미동도 없이 "한번에 니 이야기를 적어보라"라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회속에 나아갈때 채찍과 작은 고통, 시련들속에서 주님이 계심을 알게 하시고,

다시 손 내미시고 일으키시며 어떤 #福과 은혜를 줄까 고민하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모든 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어려운 일들속에 늘 고통속에 선물주시고 또 다른 고통은 늘 더 큰 축복으로 주시고 계십니다.

거래처 사장님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김대표님은 언제나 봐도 열정적이고 긍정적이고 밝으십니다.

#좋은에너지 를 지니신것 같습니다.

전 이말이 곧 하나님의 찬양으로 들립니다. 저의 에너지는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글 보시는 분도 읽으시는 분도 하나님을 믿으세요.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뀝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계획하고 다듬으시는줄 모르겠으나,

한가지 분명한건 저에게 무한 축복과 은혜를 더 주려고 고민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이 간증은 블로그 개설로 인해 소개글이라 긴 간증이구요,

이제 생활 간증으로 제가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 즐거운 일 모두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산증인의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께 찬양드리며 기도합시다.


주님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두렵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이 내 믿음이 된것 같다가도. 돌아서서 한 발자국 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접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붙잡습니다.

주님, 도와주셔요 내가 룻처럼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고,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기업이요

후사요 기쁨이였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주십시요.

이 모든 간증과 기도를 살아계신 주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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